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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인사이트/문학

존재하지 않는 기사

by 책 너머 인사이트 2024. 6. 15.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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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아질울포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기사.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그가 입고 있는 하얀 갑옷 속에는 오로지 정신만이 존재하지 분명히 존재함

    구르둘루

    아질울포의 하인으로, 존재하지만 자신이 존재하는 줄 모름. 마치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른 사람처럼 보는 모든 사물들에 자신을 대입함

    브라다만테

    존재하지만 허상을 좇는 처녀 기사로, 존재하지 않는 아질울포를 염모함

    랭보

    존재를 증명하려 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청년.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대에 합류했고, 자신을 구해준 브라다만테에 반함

    토이스먼드

    아질울포의 기사 작위에 이의를 가짐. 자신의 아버지인 성배기사단을 찾아다님.

    소프로니아

    아질울포 존재의 이유의 시작과 끝. 귀족 가문 처녀로, 강간당할 뻔한 걸 아질울포가 구해줌. 이로 인해 아질울포가 기사 작위를 받을 수 있었음 


    줄거리

    항상 하얀 갑옷 속에서만 존재하는 아질울포는 융통성없이 너무 올바르다. 그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질투한다. 구르둘루는 죽을 먹으면 자신이 죽을 먹는지, 죽이 자신을 먹는지 모를 정도로 자신이 존재하는 지 모른다. 아질울포가 이끄는 군대에 랭보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합류했다. 원수를 쉽게 갚게 되자 당황하게 된다. 전장에서 랭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브라다만테라는 처녀 기사가 그를 구해줬다. 랭보는 그녀에 첫눈에 반해버렸다. 하지만 브라다만테는 존재하지 않는 아질울포만을 사랑했다.

     

    아질울포는 사실, 기사 작위를 받기 전 되는대로 세상을 떠돌던 이름없는 하얀 갑옷 전사였다. 강간당할 뻔한 귀족 가문 처녀인 소포로니아를 구해주고 난 뒤 기사 작위를 받았다. 당시 법률상, 귀족 처녀를 구해주면 기사 작위를 주었다. 반드시, 처녀여야 했다. 기사 작위를 받은 아질울포는 기사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어느날, 소프로니아의 아들임을 주장하는 청년 토이스먼드가 나타났다. 아질울포가 자신의 어머니를 구할 당시 자신이 세상에 이미 존재했다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성배 기사단이라는 말과 함께. 그의 말이 사실이면, 아질울포가 구해준 그녀는 처녀가 아니었다. 즉, 아질울포는 기사 작위를 박탈당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자신의 존재 이유에 위협을 느낀 아질울포는 소프로니아를 찾아 나섰다. 수녀인 그녀를 찾았고, 당시 처녀였다는 사실을 확인받았다. 소프로니아를 잠시 산 속에 두고 아질울는 기사단을 데려와 그녀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기사 작위의 정당성을 보여주려 길을 떠났다.

     

    한편, 토이스먼드도 자신의 아버지인 성배 기사단을 찾으러 길을 떠났다. 성배 기사단을 만났지만, 자신의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성배 기사단이 다스리는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그는 기사단이 승리하게 도와주었다. 원하는 것을 말해달라는 기사단의 말을 듣고, 토이스먼드는 더이상 자신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태껏 성배 기사단을 만나려는 목표만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그 목표를 이뤘으니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던 것이었다. 다시 길을 떠난 토이스먼드는 산속에서 소프로니아를 만난다. 그녀를 보자마자 삶의 목표를 다시 찾게 되었고,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다.

     

    아질울포가 기사단을 끌고 산속에 왔지만, 아질울포와 기사단이 본 건 하룻밤을 보낸 소프로니아와 토이스먼드였다. 누군가 소프로니아보고, 저 여인이 소프로니아이고 토이스먼드의 친모라고 말한다. 토이스먼드는 어머니와 동침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을 타고 사라진다. 아질울포도 자신은 더 이상 기사가 아니라고 외치며 말을 타고 사라진다. 

     

    하지만 다시, 토이스먼드가 돌아와서 소프로니아는 분명 처녀였다고 말한다. 사유인즉 이랬다. 소프로니아의 계모는 남편, 즉 소프로니아의 아버지가 타지로 간 사이, 다른 남자(아마도 성배 기사단 중 한 명)와 정을 통했고, 남편이 돌아올 때쯤 소프로니아와 자신이 낳은 아들을 내쫓았던 것이었다. 따라서 토이스먼드와 소프로니아는 근친상간이 아니었다.

     

    아질울포는 결국 하얀 갑옷을 벗어던지고 홀연히 사라졌다. 랭보는 그 하얀 갑옷을 입고 전쟁에 참가한다. 그러던 중 자신을 아질울포로 오해한 브라다만테와 하룻밤을 보낸다. 랭보의 정체를 알게 된 브라다만테는 화를 내며 그를 떠나지만, 시간이 지나자 브라다만테는 랭보를 사랑하게 된다.

     

    토이스먼드와 소프로니아는 함께 길을 떠났다. 

    성배 기사단의 지배를 받던 농민들은 스스로 깨우쳐서 성배 기사단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농민들은 토이스먼드와 소프로니아에게 자신들과 같은 신분이라면 자신들과 함께 살 수 있다고 한다.

    말도 안 된다는 토이스먼드에 소프로니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우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존재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감상평

    존재란 어떤 것일까? 

     

    작중 인물들을 보면 존재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끌리고, 존재하지 않는 이는 존재하기 위해 노력한다.

     

    존재하지 않는 아질울포는 신체적 제약이 없기에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하얀 갑옷 안에서만 존재하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기사 작위'에서만 찾으려고 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소포로니아의 처녀성을 증명해야 했기에 그녀를 찾아 떠난다.

     

    겨우 그녀를 찾았으나 소프로니아가 토이스먼드의 친모라는 말을 듣고, 더 이상 기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하얀 갑옷을 벗어던지고 홀연히 사라진다. 너무 성급히 결정한 아질울포가 안타깝기는하지만 아질울포가 하얀 갑옷에서 벗어나서야 진정으로 자신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과연 그는 진정 자유를 찾았을까?

     

    아니면 또 다른 존재의 이유를 찾아서 다른 갑옷을 입고 또 갇혀 살고 있지는 않을까?

     

    아질울포는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며 살아가야 하는 요즘의 우리와 꼭 닮았다. 

     

    만약 아질울포가 '기사'로서의 존재 이외의 존재의 이유가 여럿 있었다면, 가령, 누군가의 친구로서의 아질울포, 누군가의 자식으로서의 아질울포였다면, 기사로서의 자신이 사라졌다 하더라도 잘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도 우리의 역할을 잘 배분해야 한다. 직장인으로서의 나, 블로거로서의 나, 애서가로서의 나, 누군가의 가족으로서의 나, 등 나의 존재 이유를 잘 나눠놓으면 설령 하나가 삐끗하더라도 살아갈 이유는, 행복해야 할 이유는 분명, 항상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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