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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인사이트/문학

카사노바를 쓰다

by 책 너머 인사이트 2024. 8. 11.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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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사노바라 쓰고 호색가라 읽는다

    카사노바는 여성이라는 성자체를 좋아했다. 자신과 반대 성을 지닌 여자면 '누구도' 충분했다.

    흉측하게 깡마른 여인부터 70세 공작부인까지 가리지 않았다.

    그는 개별적인 여인에게 빠진게 아니라 여성이라는 남성의 반대 성 자체, 다수로 된 여인들에게 사로잡혔다.

     

    카사노바는 사랑의 모험을 위해서라면 이 세상의 모든 약속들, 명예와 지위, 품위를 담배 연기처럼 날려 버렸다. 돈이 있는 한 카사노바는 그 어떤 여인에게든 정성 들여 고른 선물들을 한 아름씩 안겨 줌으로써, 그들의 공허한 허영심을 사치로 달래 주었다.

     

    그는 여인들을 미친듯이 사랑했지만 자유를 더 중시했기에, 늘 여인들을 떠났지만, 그와 밤을 보낸 여인들은 절망감이 아닌 행복감을 맛보았다. 그들은 유유히 일상생활로, 남편에게든 애인에게로 돌아갔다.

     

    한편, 카사노바를 떠올리면 호리호리한 몸매에 예쁘장한 얼굴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예쁜 청년이 아니라 헤라클레스처럼 딱 벌어진 어깨에 근육질의 육체를 지닌 남성다운 남성이었다고 한다. 

    카사노바의 천부적 재능

    카사노바는 학자, 시인, 철학자, 기사 등 전 분야의 달인에 '거의' 근접했다.

    천부적 재능으로 학문, 예술, 외교, 사업수완 등 다방면에 걸쳐 능란했다.

     

    그중에서도 카사노바의 가장 큰 보물은, 그도 늘 말했듯이, 카사노바는 진정한 자신의 주인이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나의 가장 큰 보물은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 그리고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타인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떠한 여인, 국가, 직업도 그를 잡아둘 수 없었다.

    그는 늘 모험적으로 살고자 했다. 언제 어디서나 용기와 자신감을 가졌다.

     

    용기란 카사노바에게 있어 최고의 재능이었다. 

     

    돈 후안  VS 카사노바

    흔히들 여성 편력가를 보면 돈 후안 아니면 카사노바로 부른다. 마치 둘은 동급인 것처럼.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카사노바나 돈 후안은 전혀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인물 배경

    돈 후안은 1630년 티르소 데 몰리나가 쓴 희곡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에서 등장한 허구인물인 반면, 카사노바는 18세기 이탈리아 출신으로 실존 인물이다.

     

    여성관

    돈 후안은 여성들을 단순히 정복의 대상으로 여긴다. 돈 후안은 여인과 하룻밤을 보낸 후 차디찬 냉소를 끼얹었다. 반면, 카사노바는 여성들을 존중하며 정서적 친밀감을 중시했다.

     

    돈 후안과 밤을 보낸 여인들은 그를 증오했고 이후 남성 전체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반면 카사노바에게 몸을 바쳤던 여인들은 그를 신처럼 떠받들며 감사를 표했다. 카사노바와의 만남 이후 여인들은 자신의 친구, 동생, 심지어 딸을 그에게 소개해주기까지 했다. 카사노바를 만난 여인들은 한층 더 여성스러워졌으며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

     

    카사노바의 자서전(내 인생 이야기)

    과거의 영광은 지나가고, 노년의 비탄과 괴로움에 휩싸인 카사노바는 과거의 영광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먹고 마시는 것, 빈곤, 비참, 굴종, 성 불능, 노년의 모든 비탄과 괴로움도 잊어버렸다. 그 대신 추억의 거울 속에서 꿈꾸듯 젊어져서는 과거의 영광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9년 간의대장정이었다.  

     

    자서전, 찬란한 영광의 회고록 집필은 그가 노년의 비탄에 빠져 미쳐 버리지 않기 위한, 분노로 죽어 버리지 않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는 절대 몰랐을 것이다. 그의 자서전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것을. 문학, 역사, 그리고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을. 

     

    그의 자서전은 18세기 유럽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료로 여겨진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보는 카사노바

    슈테판 츠바이크는 작가로서의 카사노바의 천재적인 재능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는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카사노바는 작가가 아니어도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소설을 쓸 수 있고, 역사학자가 아니어도 가장 완벽한 시대상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전문작가가 아님에도 필력을 자랑하는 카사노바를 진정으로 부러워했음을 알 수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서문에서 카사노바는 '불멸'의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영원불멸은 인간의 순수성이 아니라 통일성, 초지일관된 범례와 형태를 요구한다. 이를 위해 도덕은 아무것도 아니며, 내포적인 힘만이 전부인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역시는 역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은 무조건 믿고 본다.

     

    [카사노바를 쓰다]를 읽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 특히 평전시리즈는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보는 역사의 획을 긋는 인물들은 어떤 모습일지 몹시 궁금해졌다.

     

    평전은 전기와 달리 대상 인물의 삶을 보다 비평적이고 해석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기에 작가의 역량이 중요한데, 수많은 고전을 읽으며 해박한 지식을 쌓은 슈테판이기에 더욱 기대가 된다. 

     

    뿐만 아니라 카사노바의 자서전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그의 자서전은 그 자체로 문학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기에 더 읽고 싶어졌다.

    18세기 유럽 귀족 사회의 생활양식 등도 엿보고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철학자 볼테르와의 만남에 대한 내용이 기대가 된다. 

     

    카사노바같이 화려한 청년시기를 보낸 사람이 노년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좀 애처롭기도 하다. 

    노년의 비탄함을 잊기 위해 시작한 자서전을 쓰면서 행복했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돌아와야 하는 척박한 현실이 더 고달팠을까?

     

    행복... 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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